이 글은 철학과 물리학에서 가장 큰 미스테리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기 위해 씌여졌다.  다소 철학적이고 복잡한 주제를 담고 있기에 표현이 보다 자유로운 한글로 작성하는 바이다. 



새로운 시공간 개념에 대한 이해가 왜 필요한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에 대한 필요성은 물리학을 지탱하는 두개의 큰 원리들인 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에 아직 남아있는 문제점을 풀고싶어하는 모든 물리학자들이 가장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 두개의 원리를 통합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아직 개발단계인 양자 중력(Quantum gravity) 분야에서 씨름하고 있으나, 사실 이들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완전한 통합이론을 배출하기엔 극복하기 어려운 커다란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 이유들중 가장 큰 것은 양자역학에서 이용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과 상대성원리에서 이해하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서로 맞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양자 역학에서의 시간과 공간 개념은 시간의존적인 슈뢰딩거 파동 방정식(Time dependent Schrodinger equation)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독립적이고 절대적이다. 여기서 하나의 소립자의 모든 상태의 변화는 슈뢰딩거 공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때 공식에 포함되어 있는 시간과 공간 변수(parameter)는 다른 관측자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단독으로 유효하다. 다시 말해 시간 의존적 슈뢰딩거 파동방정식은 타자에 의존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서 완전하게 입자의 운동을 기술할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코펜하겐해석에서는 다른 관측자의 관측이전에는 어떤 것도 알수 없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입자가 공간에서 발견될 확률적 발생빈도가 관측이전에 결정되어 있는 사실을 비추어 보면 실체는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상대성 원리에서는 물체의 운동의 기술 또는 물질의 상태 변화는 필수적으로 시간과 공간 좌표에 의해 기술될수 밖에 없는데 이 물질이 기술될 시간과 공간은 제2의 물질에 의해 왜곡될수 밖에 없다고 보기에 타자의 존재에 의해 언제든지 달라질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말하면 상대성원리에서는 물체의 운동은 단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제2,3의 질량을 가진 물체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지기에 상대적으로만 기술될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다. 예를 들면 빈 우주 공간에 어떤 물체가 관성운동을 하고 있고 관측자가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고자 할때 물체의 운동은 공간내의 제3의 물질의 존재 유무에 따라 관측대상과의 직접적인 상호동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물질의 존재가 관측대상의 시간과 공간 축척을 왜곡시킬수 있기에 타자에 의존적이라 할수 있다.


이 두개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의 축척이 다른 입자나 물질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존재 여부에 독립적이냐(양자역학) 또는 의존적(상대성원리)이냐 로 갈린다는 것을 보면 양대원리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합치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 현재 물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고민이다. 어떻하든 이 서로 다른 두 개념을 합하려고 하는 모든 물리학자들의 시도는 아직까지 계산 결과가 무한값으로 나오게 되는 실패로 끝나왔다. 자연에서 존재하는 힘의 종류중 가장 먼저 알려진 중력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개념이고 쉬운 개념이지만 물리학에서는 가장 미스테리한 힘으로 남아 있고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표준입자물리론에 통합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가 절실하고 모든 물리학자들이 찾고 있으나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몇몇 물리학자들에게 있어서 이문제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원리나 개념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지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원리의 도입에 대한 필요성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


양자역학에서의 시공간 개념은 주로 연구대상들이 빛입자나 소립자들의 운동처럼 가벼운 입자들이었기 때문에 시공간의 왜곡이 상대적으로 작거나 거의 없기에 시공간의 왜곡을 무시하고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입자의 운동을 기술할수 있었다는 이점을 누렸다는 점에서 비교적 원시적이이라고 할수 있다. 고대로부터 아인슈타인 이전까지는 시공간의 왜곡이 없다고 가정하고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였기에 원시적이거나 단순하고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만이 유효했던 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의해 시공간이 물질의 존재에 따라 왜곡될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공간이 절대적이기 보다는 상대적이고 사려깊은 고려를 필요한다는 점에서 보다 진보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문제는 시공간에 대한 보다 진보된 관점을 가지고 원시적인 관점을 가진 양자역학을 고치려 할 경우 다시 말해서 보다 진보된 시공간 개념을 양자역학에 도입하려 할 경우 이론적으로 말도 안되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는 하나의 통합된 이론이 아니라 소립자에 대한 운동의 기술을 위해서는 양자 역학을, 무거운 물질의 운동에 대한 기술에서는 상대성이론이라는 두개의 별도의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왜 두개의 이론을 합칠수 없는가? 블랙홀이나 빅뱅의 운동을 기술하고자 할때 우리는 이 두개의 이론을 동시에 적용해야 하는데 통합이론이 없는 관계로 아직까지는 정확한 운동을 기술할수 없는 상황이다. 통합이론의 걸림돌은 무엇인가?


두개의 원리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수도 없는 검증을 거쳐왔고 살아남았고 많은 상태의 변화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었기에 거의 절대적으로 옳은 관점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즉 다시말해서 각각의 원리가 가지는 시공간 개념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거듭 얘기하지만 모든 물리의 연구대상은 관측대상의 시공간에서의 상태변화가 전부로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개념이 시공간인 것이다. 그러한 기본개념을 바탕으로 모든 운동을 예측할수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개념의 적용은 성공적인 것이고 그러한 이유로 그 존재에 대한 타당성이 인정된다고 할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양자역학에서의 절대적 시공간의 개념을, 상대성원리에서의 상대적 시공간의 개념을 각각 인정해야 한다는게 필자의 주장이다.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지지하는 두개의 철학 사상


그러면 절대적 시공간의 개념과 상대적 시공간의 개념이 어떻게 연관될수 있어야 하는지 그 근거를 대는건 필자의 몫이 될것이다. 이 관계를 이해할수 있다면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때 독자들 역시 아마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혁명수준으로 바뀌게 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이 시간, 공간, 질량들일 것인데 이러한 개념들은 철학에서 부터 비롯되었다고 할수 있고 이들 개념들의 원형이 나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연구결과를 돌이켜 봄으로써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할수 있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두개의 서로 다른 개념을 연결짓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철학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of Elea)의 존재론(Ontology)이고 다른 하나는 피타고라스의 만물은 수이라다는 사상으로 이 두개를 염두에 두고 있으면 필자의 서로 다른 시공간의 개념을 연결짓기 위한 설명이 보다 쉽게 이해 될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감이 잡히지 않겠지만 설명을 진행해 나가면서 서서히 감이 잡히게 될 것이고 이해가 완전하게 될 때 연결의 간결함이 가져다 줄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존재론(Ontology)에서 내거는 사상에 대해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 Parmenides는 '것' 또는 실체(thing)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그의 사상에서 엿볼수 있다. 그는 실체는 확인할수 없고 사람의 감각은 실체의 왜곡된 면만을 감지 할수 있다고 보았다. 사람은 '것'에 대해 감각기관으로 감지하거나 두뇌에서 추론으로 이해하지만 그로 인한 이해는 실체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보지 않고 실체의 일부나 또는 생각의 주체인 사람에 의해 왜곡된 형상으로 인지된다고 보았기에 사람의 감각기관이 '것'을 왜곡시킨다는 사상을 피력했다. 이러한 사상이 시공간에 적용된 사례를 뉴튼에게서 찾아 볼수 있다.



뉴튼이 쓴 책중 가장 유명한 것이 Principia로 여기에서의 주석에 따르면 뉴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표현을 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Absolute_time_and_space)


Absolute, true and mathematical time, of itself, and from its own nature flows equably without regard to anything external, and by another name is called duration: relative, apparent and common time, is some sensible and external (whether accurate or unequable) measure of duration by the means of motion, which is commonly used instead of true time ...


여기에서 보면 뉴튼은 '때'(Time)에 대한 실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나 '때'의 또다른 표현 '때차이'(duration)는 사람에게 인지될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때에 대한 대치물로 이용된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때'는 사람이 인지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존재하고 그 어느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고정된 비율로 항상 흐르고 있다고 보며, 사람이 때의 개념을 인지하는 경우는 특정 두개의 사건의 '때차이'를 감지할 때 가능해진다는 존재론의 사상을 뉴튼이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구는 200년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상대적 시공간 개념을 뉴튼도 이미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단지 뉴튼은 아인슈타인이 확인한 상대적 시공간개념에서의 축척이 '때'의 축척과 달라질수 있다는 점을 몰랐을 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관측될수 있는 시공간의 축척이 상대적이고 이 관측가능한 시공간이 뉴튼의 운동법칙에서 사용된 절대적 시공간 개념과는 차원이 틀린 상대적 관념이라는 점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그래서 상대적인 시공간 관념인 관측가능한 시공간의 개념으로 모든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뉴튼의 절대적 시공간개념은 유효하지 않고 보다 선진화된 상대적 시공간 개념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이것이 지금 주류물리학자들의 인식이다.


필자는 뉴튼과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을 절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 물리학자들이 당면한 장벽을 넘기 위해서 이것은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과연 어떻게 절충할수 있을까. 답은 질량에 있다. 상대적 시공간의 축척은 절대적 시공간의 존재로부터 기인하고 그 변화는 질량에 따른다는 게 필자의 핵심주장이고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편에서 하도록 하겠다.


향후 이어짐...

Posted by kev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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