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 강세의 이치
- 세일러
제가 전에 ‘이치를 따진다는 것’이라는 글을 올렸었는데요, 그에 대한 댓글 중에 ‘이치대로 따지자면 경제 위기가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니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달러 강세의 이치를 따져보려고 합니다. (요즘은 약세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일단 금융위기 발생 이전보다는 여전히 강세다, 라고 말씀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달러가 왜 강세일까요?
포인트는 환율은 서로 다른 두 통화 간의 ‘비교를 통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원래 대부분의 평가라는 것이 ‘절대 평가’(이것도 신의 영역인 듯)는 어렵고 다른 존재와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달러가 그냥 강세가 아니라 다른 통화와 대비해서 강세입니다. 예를 들어 유로화나 우리 원화에 대비해서 강세입니다.
화폐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그 나라의 경제력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 유럽과 한국의 경제가 미국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 유로화와 원화는 미국 달러에 비해 약세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요는 미국의 경제 형편이 좋기 때문에 달러가 강세인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형편은 나쁘지만, 유럽이나 한국의 경제 형편이 더 나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달러가 강세인 것입니다.
위기의 시발점은 미국이었는데, 정말 유럽이나 한국의 경제 상황이 미국보다 더 나빠질까요?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분기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미국은 아직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유럽이 먼저 마이너스(-) 성장률로 떨어졌습니다. 물론 미국도 3분기가 되면서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요는 미국 경제가 힘들어지면 유럽 경제가 더 먼저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수출의존도가 유럽보다 훨씬 높은 우리 한국 경제는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 경제가 미국 경제에 의존해왔던 측면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세계 각 국의 경제가 미국의 과소비에 의존해서 성장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소비자들의 과소비는 자산버블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었구요. 그러다가 거품이 뻥, 하고 터진 것입니다.
그럼 미국의 소비 침체로 미국 경기가 나빠지고, 그에 의존했던 유럽과 한국 경제는 더 나빠집니다.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가 미국 달러의 유로화, 원화에 대한 강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뜻 '통념'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래는 전에 캡쳐해두었던 그림입니다. 미국증시가 폭락했던 날 아침에 캡쳐한 세계 각국의 환율입니다.
날짜를 보니 11월 7일이네요. 그 전날 미국증시가 - 4.85% 폭락을 했습니다. 이렇게 미국의 증시가 폭락을 하니(미국의 실물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신호가 나오니) 미국 달러화가 일제히 세계 각국의 통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엔화, 위안화만 예외입니다).
미국 증시 폭락이 미국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신호이긴 합니다만, 그로 인해 다른 나라들의 경제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이니 ‘상대적으로’ 미국 달러가 다른 통화들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설명은 이렇습니다만, 하여튼 당시 세계 각국 환율의 반응을 지켜보려니 참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캡쳐해두었던 것입니다.
이상이 화폐의 가치적인 측면에서 살펴 본 달러 강세의 이유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참고 삼을 수 있는 것은, 미국 증시의 다우지수 흐름을 보면 11월 20일 이후 안정적인 흐름(완만한 우상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원달러 환율 차트를 보시면 동일하게 11월 20일 이후부터 안정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로달러 환율 차트를 보셔도 비슷한 시기부터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으면, 만약 미국 증시가 다시 폭락하는 사태가 온다면 원달러 환율도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따져볼 수 있습니다(경제학에서는 항상 수요와 공급이 기본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이 줄줄이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습니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우리 나라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이들 나라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어떻게든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것(외환 부도가 나는 것)만은 피해보려고 필사적으로 미국 달러를 구했을 것입니다(필사적인 달러 수요 증가). 하다 하다 안되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 나라가 그랬듯이 이제 이들 나라들은 달러에 한이 맺혀 앞으로는 필사적으로 외환보유고를 쌓으려고 할 것입니다(미래의 달러 수요 증가가 보입니다).
급한 정도만 조금 다를 뿐 지금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비슷한 상태입니다(중국, 일본 정도가 예외일 수 있겠습니다).
선진국들은 금융위기 발생 초기에 모두 미국 FRB와 통화스왑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선진국들도 외환보유고가 불안한 것입니다. 그 뒤 FRB에서 추가로 협정을 받아준 우리 나라,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도 급하게 중국으로부터 달러를 지원받기도 했습니다. 5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3위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던 러시아도 달러가 급한 지경이니 중국, 일본 정도를 제외한 전세계 모든 국가가 달러가 급하다고 보시면 됩니다(전세계적인 달러 수요 증가).
달러를 둘러싼 수요와 공급이 이런 상황입니다. 그러니 수급 측면에서도 달러가 강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사실 미국의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필사적으로 미국 달러가 필요한 상황에 내몰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비상시가 되면 기축통화만이 ‘진짜 돈’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원화를 아무리 많이 쌓아 놓고 가지고 있어도 이는 제대로 된 ‘진짜 돈’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한반도 안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으면 괜찮지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쉽게 생각해서 당장 원유를 수입해 와야 하지 않습니까? 원유를 수입하려면 원화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기축통화인 달러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40% 가까이나 됩니다. 이 수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사실 지나치게 높은 감이 있습니다. 우리 경제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체제라면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원화는 진짜 돈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가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비상시에는 기축통화인 달러만이 진짜 돈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쯤에서 지금 우리가 굉장히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치를 따져보면 터무니없이 불공정한 게임입니다.
우리 나라는 10년 전에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외환위기는 전국민에게 물질적인 피해 만이 아니라 깊은 정신적인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상처는 아직까지도 남아있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우리 경제가 아직도 IMF가 심어놓은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우리들은 그 이후로 달러에 한이 맺혔고 외환보유고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10년 동안 온 나라가 수출에 목을 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삼성, 현대차 등 수출하는 대기업들(수출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주로 대기업들이 합니다)이 한국사회에서 좀 지나친 대우와 존경을 받고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도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전 국민이 외환위기 때 받은 정신적인 상처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대기업들은 나라를 구하는 영웅적인 존재 정도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정신적인 강박증을 느낄 정도로 수출에 내몰려서, 피땀 흘려 일해서 경제적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세계 6위의 외환보유고를 쌓았습니다.
그럼 이제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10년 만에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미국이 잘못했는데 말입니다. 물론 우리 나라의 내부에도 여기저기서 과도한 쏠림이 존재하긴 했습니다. 그로 인해 위기상황이 증폭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이번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잘못으로 시작된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건 이치적으로 따져봐도 매우, 대단히 불공정합니다. 게임의 규칙 자체가 처음부터 불공정하게 짜여 있습니다.
세계 경제체제라는 것이 처음부터 매우 불공정한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판과 같습니다. 그 경제체제 안에서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해봐야 비기축통화국가들(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은 단 한 방에 날라갈 수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것은, 세계의 기축통화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달러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새 음모론이 얘기되는 것은 이러한 사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근거 없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라고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러한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래 기사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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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원자바오 총리의 연설은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다른 통화들이 나눠 가져야 한다는 중국 기존 입장의 연장선이다. 중국은 위안화를 비롯해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이 무역대금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기축통화의 다극화 체제를 원하고 있다. 스젠쉰(石建勛) 중국 퉁지(同濟)대학 경제학과 교수(인민일보 컬럼니스트)는 "음울한 금융위기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미국이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세계의 부를 착취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이제 세계는 미국이 국제경제에서 유지해온 지배적 지위와 달러화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거침없는 발언을 거듭해 왔다.
러시아도 중국과 비슷한 생각을 여러차례 밝혔지만 중국과 의기투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푸틴 총리의 제안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생각이기도 하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그간 미국이 금융 위기를 전세계에 `수출`했다고 비판해 왔고 국제사회를 고통에 빠뜨린 신용 위기도 `미국의 잘못된 금융시장 관리`에서 비롯됐다고 여러차례 강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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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달러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중이고, 경제의 새 판을 짜려는 시도들이 진행중입니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하여튼 현재 전세계적으로 ‘금융’시스템을 둘러싸고 긴박한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2008년 현재 우리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먼 훗날 역사가들은 2008년을 전후하여 세계경제사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두고두고 연구하고 논평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세 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 yeda
- 이쯤에서 읽어보는 재미있는 자본론 [따라서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계급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계급의 존재는 우리가 이때까지 도달한 입장, 즉 단순상품유통의 입장에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다.
- 그러나 여기에서는 상상력을 동원하자. 이와 같은 계급이 끊임없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폐는 - 교환없이, 무상으로, 어떤 권리 또는 강제에 의해 - 상품소유자들 자신으로부터 끊임없이 이 계급에게로 흘러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급에게 상품을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무상으로 준 화폐의 일부를 속여 다시 찾아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 예컨대 소아시아의 도시들은 고대 로마에 매년 화폐공납을 바쳤다. 로마는 이 화폐를 가지고 이 도시들로부터 상품을 구매했는데, 그것도 대단히 비싼 값으로 구매했다. 소아시아인들은 상업이라는 방법을 통해 로마인을 속임으로써 자기들의 정복자들로부터 자기들이 바친 공납의 일부를 회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은 자는 역시 소아시아인들이었다.
- 왜냐하면 자기들의 상품의 대가는 여전히 자기들이 바친 화폐로 지불되었기 대문이다. 이러한 것은 결코 치부하는 방법 또는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방법이 아니다.
- - 마르크스 자본론(비봉출판사) 1권의 상 211p 08.12.19 IP 123.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