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토론 [학습]데이터핸들링하지 않고서야...한은이 물가를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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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호 839859 | 09.12.26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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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 안녕...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아고라에 들어와봤다. 오래간만에 관심있는 주제들이 논의되고 있어서 거들고 싶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물가고, 인플레이션 논쟁이다. 논쟁의 형태는 아닌 듯 하지만, 여튼 관심있는 주제인 듯 하다.

한국은행은, 다들 잘 알고 있다시피,  '물가안정'이 본래 목표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이 금리 조정-이건 최근의 출구전략 어쩌구들과 직접 연계돼 있다-이다. 

물가는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돈의 가치이고, 이 가치는 한국은행에 대한 신뢰, 혹은 신뢰도를 의미한다. 한국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거기서 발행하는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럼 당연히 물가는 올라간다. 한국은행은 그래서 시중에 나가있는 돈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금리를 쥐락펴락한다. 

돈을 많이 풀면 가치가 떨어지고, 돈을 빨아들이면 가치는 올라간다. 같은 물건의 가격이 변동하는 주요 원인이다. 다들 아는 매커니즘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이유는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보다는 좀 더 복잡한 것 같아서다. 

한은은 물가안정목표제를 쓴다. 물가상승률 목표를 먼저 박아놓고 그 안에서 금리를 조정해 돈의 가치를 유지하겠다는 거다. 현재 물가안정목표 범위는 2007년부터 2009년이다. 물가안정목표제는 2008년부터 했지만 정책이 시행되어도 시장에 반영되는 효과에 시차가 생기기 때문에 대략 3년을 잡아 그 동안의 소비자물가 연평균 상승률을 평균낸다. 그 목표는 3.0에서 0.5% 변동폭이다. 

이걸 정한 건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이 자행의 신뢰도, 다시 말해 원화의 신뢰도를 유지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고려해서 정한 거다. 달리 말하면 3년간 물가가 3.5%이상 오르면 한은은 자기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고, 시장에서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는 걸 의미한다. 신뢰란 말은 금융시장에서 다들 많이 쓰지만, 한국은행 만큼 한국경제에서 신뢰가 중요한 곳은 단언코 없다. 

대개 일반 시민들은 정부가 물가를 잡아야지, 어쩌고 그런 말씀들을 모르시고들 한다. 그러나 정부는 물가를 잡을 사실상의 권한이 없다. 선거때만되면 유권자들에게 약속하는 뭐 그런 시덥지 않은 소리다. 달리 말하면 정부는 물가를 못잡으면 '분명히' 한은에 책임을 돌릴 거다. 법으로 그렇게 정해둔 거다. 

자, 그러면. 
3년 중에 2009년 한 해만 빼고 나머지 소비자물가 연평균은 나와있다. 내가 올해 소비자 물가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2007년 소비자물가 전년동기대비증감률은 2.5%, 2008년은 4.7%다. 한은에 들어가면 잘 계산된 내용이다. 

(2.5 + 4.7 + x)/3=3.5 인 x가 되어야 한은은 물가를 안정시켰다고 할 수 있다. x는 최대한 3.3이어야 한다. 

아직 2009년 12월 소비자물가 지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각 월별 물가는 나와있다. 
3.7 4.1 3.9 3.6 2.7 2 1.6 2.2 2.2 2 2.4
1월부터 11월까지 월별 전기대비증감률이다. 평균은 2.76이다. 자, 2009년의 소비자물가가 3.3을 넘기려면 2009년 12월의 소비자물가 평균은 9.2%에 달해야 한다. 12월에 산타랠리를 맞아 돈 좀 잡았다고 아무리 카드를 긁어도 불가능한 수치다. 다시 말해, 한은은 목표로 한 물가안정에 성공할 것이다. 

한은이 정한 목표를 벗어나게 되면 당연히 인플레이션이다라고 할 만하다. 그 선이 넘어가버리면 한은의 신뢰가 추락해 물가가 폭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수치 상의 인플레이션 공포는 없다고 보는게 맞다.

그러나, 의문스러운 것은...

2007년 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월별 평균 상승률을 보면 2008년 7월 5.9%를 고점으로 해서 가파른 산 형태를 보였다. 그 때가 추석이었고, 추석 물가 잡아야 한다느니 하면서 난리를 치던 때다. 그 뒤로 가파르게 물가상승률이 급락세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다음해인 2009년 7월은 자그마치 1.6%에 불과하다. 이건 정상적인 경제가 아니다. 어떻게 어떤 해에 같은 달은 5.9%나 오르던 물가가 다음해에는 1.6%만 오를까. 

금융위기 이후 유가와 금값이 오르면서 고환율에 곱배기됨에 따라 수입물가 상승분이 2008년 소비자 물가 상승세를 부추긴 것은 맞다. 그런데 어떻게 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제에서 물가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잡힐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렇게 되려면 1)기업하는 사람들을 나라비를 세워놓고 시장가격을 반영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거나, 2)극빈층을 중심으로 기아 사태가 벌어지도록 수요가 가파르게 사라져야 가능하다. 또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3)경제 위기, 즉 비정상적인 경제상황임을 감안하고 물가 데이터를 일부 손볼 수도 있다는 거다. 

1)은 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한국 시장경제가 아직 후진적이니 정부가 뭐라카면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순순히 따르는 기업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건가격이라는 것은 최종 소비자가격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중간의 부가가치를 모두 더해서 나오는 것인 만큼 전체 경제를 심각하게 위축시키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2)를 다른 데이터로 비교해보자. 소비자심리지수라는 것이 있다. 100을 기준으로 그 이하면 소비자들의 심리가 위축되는 거고 이상이면 그 반대다. 금융위기 직후부터 급격하게 떨어지던 심리지수는 2009년 3월, 그러니까 환율이 꺽어지기 직전 84까지 떨어졌다가 4월 98이 됐다가 5월 105로 100을 넘어갔다. 그리고 점차 상승해 7월 109까지 오른 뒤, 지금까지 100이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3개월간 심리가 크게 호전된 거다. 다르게 말하면 물가상승률 1.6% 때의 수요위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수요는 늘어날 텐데 물가는 안 오른다는 신비로운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3)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소비자물가를 통계내는 주최가 한은인데, 한은이 설마 그랬으리라고 생각하면 불경스럽다. 

그 와중에 지난달 26일 한은 금통위에서 의미심장한 결정을 내렸다. 2010년 이후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정부와 협의'해 금통위, 금융통화위원회가 의결한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는 3.0%수준으로 잡는데 변동폭을 1%로 수정한 거다. 물론 한은 총재할아버지는 물가 불안 때문이 아니라고 하셨다. 물가가 안정되던 2004년 1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변동성이 0.7%포인트였고,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 효과가 강했던 2007년 10월~2009년 10월 중에는 0.9~1.2%로 확대됐었다는 거다. 그래서 변동 허용폭을 늘이자라는 거다. 

거기다가 2010~2012년 중에는 물가여건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크게 달라지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현재 꾹 잡아뒀던 물가상승효과를 내년으로 이연이시켜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된다. 2009년까지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2010년부터는 여유가 크게 남기 때문이다. 물가목표 변동폭은 사실 마이너스에 관심이 없다. 실제 국민들에게는 얼마나 오르냐가 걱정이다. 그래서 그 상한선이 3.5%에서 4.0%까지 오르는 것과 같다. 물가가 0.5% 더 오르면 기업들은 더 살판나고 일반 국민들은 죽을 판이 벌어진다. 

다시 말해 변동폭에 따라 물가상승에 대한 책임이 한은으로서는 줄어드는 효과다. 그리고 정부의 성장정책을 그만큼 용인하는 것이다. 그 둘만 좋다. 물론 경제가 성장해서 다들 잘 살면 좋겠다. 그러나 물가상승이 단순히 이연되는 효과를 노린다면, 국민들은 가상의 경제성장률에 현혹된 상태에서 더 말라 주는 효과로 나타난다.

물가는 경제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물가 상승여력이 있어야 더 많은 돈이 유통될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 다시 말해 정부와 협의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거다.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그 의심은 힘을 받지 않을까 싶다. 

그에 더해 한은은 한은법 개정에 탄력을 받고 있다. 한은이 직접 은행들을 감독할 권한을 가지는 건데, 이건 한은으로서는 수십년간 고대하던 최대 욕망이다. 그리고 그걸 현 의회 안에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다수당뿐이다. 일종의 딜인데, 한은이 출구전략을 늦춰 금리 인상을 지연시키면서 경제성장률 여력을 늘여주는 대신, 내년 정기국회 내에서 한은법을 어떤 방식으로든 통과시켜주는 정도의 딜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정부는 금융위기를 벗어났다고 강조하면서 한은은 금리인상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걸 보면, 양자간의 프랜들리한 관계 형성의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금리가 떨어져있으니 경제는 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겠고 기업하기는 편할 것이다. 대신 물가상승압박은 강해지고 그런 언스태이블한 상황은 내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언제라도 퍽 하고 터뜨리면 현재의 최저금리는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거다. 천천히 금리를 올려서 시장 상황과 맞춰주지 않으면, 내년 불안한 시장상황과 맞물려 국채 등 채권가격은 급락하게 되고 기업의 신용도는 급락한다. 위기를 벗어난게 아니라 유보시킨 것과 같다. 

2010년도의 물가상승 불안요인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경제지표들이 안정화되고 있고, 이는 정부가 말씀하시듯, 가장 먼저 금융위기를 탈출한 결과라는 건데,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불안정성이 커진다? 수출중심의 경제에서 국제 경제 상황보다 더 큰 불안요인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사실 전국의 소비자물가를 일일이 조사할 수 있는 사설 기관은 없다. 공공 기관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은이나 통계청이 지속적으로 조사한다. 그런데 물가 조사란 것이 그렇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조사대상을 특정해 조절가능하다. 정확한 조사라는 것은 발표기관이 어디냐가 아니다. 국민이 느끼는 물가상승 압박이 적확하게 수치로 드러나느냐다. 삼겹살 1인분 가격이 날이 갈 수록 올라가 1만원이 넘어가는데 물가는 안올랐다는 걸 국민들이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만일에 말이다. 한은이 정부와 좋은 말로 머리를 맞대고 윈윈하려고 하는 와중에 정확한 데이터를 가리고 있는 것이라면, 물가상승목표를 저버린 것보다 더 심각한 한은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게다. 그런게 정치경제학상의 인플레이션이다. 

말이 길었다. 연휴동안 푹 잘란다. 

Posted by kev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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