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토론 정부당국의 실책과 외환시장의 괴물
  • 세일러 세일러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440588 | 2008.12.11 IP 125.129.***.46
  • 조회 3588 주소복사

어제의 제 글을 좋게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제 점심을 먹고나서 엄청나게 늘어난 조회수와 댓글에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글을 올릴 때는, 딱딱한 경제원리와 데이터를 다루는 저의 글이 아고라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점심 먹고 들어와서 아고라에 접속했을 때, 엄청나게 늘어난 댓글을 봤을 때 느꼈던 압박감이란

 

서서히 제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이 느껴지면서 하루종일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발을 잘못 담근 것이나 아닐까 하는 우려 같은 것,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밤에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내린 최종 결론은, 그래 첫 글을 올릴 때부터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거야, 였습니다. 내친 김에 제가 쓰려는 글을 쭉쭉 적어나가겠습니다.

 

제가 쓰려는 글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시라는 것입니다. 현 상황은 위기 상황입니다. 평상시라면 전문가나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지해서 판단해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처한 상황,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 여러분이 처한 상황은 여러분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저는 꽤 많은 전문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우 역설적으로 지금 처한 위기상황이 아주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공부해야 할 게 많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은 아주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근본적인 원리로 돌아가서 판단을 내리길 요구합니다. 근본적인 원리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근본적인 원리를 확실하게, 제대로 이해하고 몇 가지 경제지표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그럼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 글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인 경제 원리와 판단에 도움이 되는 경제 지표 몇 가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보증을 드릴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해보겠다는 열의만 있으시다면 분명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경제 원리와 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여러분 스스로 판단을 내리십시오. 아무도 쉽게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건 저도 포함하는 얘기입니다. 아무도 쉽게 믿지 마시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십시오. 지금 시대 상황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앞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반등을 주는 국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반등이 꽤 오래갈 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습니다. 현재 시장에 팽패해있는 비관론을 걷어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낙관론을 불어넣을 때까지 반등이 지속될 지도 모릅니다.

 

쓸데없이 비관론에 사로잡혀 좋은 투자기회를 놓쳤다며 뒤늦게 다시 주식시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때가 반등의 끝일지 모릅니다.

 

이럴 때 경제 원리와 경제 지표를 가지고 판단하시면 됩니다. 언론에 실리는 전문가들의 전망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경제원리와 지표에 의지해서 스스로 판단을 내리시면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양해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입니다. 어제 오전까지는 여러분들께서 주신 댓글에 답글을 달았었는데, 오후부터는 엄청나게 늘어나버린 댓글에 답글을 달지 못했습니다. 댓글 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나중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 다시 댓글에 답을 드리기로 하고 우선은 양해부탁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사항은, 어제 댓글 중에 질문주신 사항의 상당부분이 그저께 제가 올린 첫번째 글에 나와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글과 그저께 글의 조회수 차이를 보면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두번째 글만 읽고 첫번째 글은 읽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글만 읽으시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 첫번째 글을 읽지 않으신 분은 다시 돌아가서 그 글부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출업체들의 선물환 매도를 둘러싼 시장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래야 다른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제부터 이어지는 내용 계속해서 쓰겠습니다.

 

=============================================

 

 

어제 글에서는 외환시장의 수요공급 중에서 공급 측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수요 측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실책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실책이 초래한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금융위기가 본격화 되기 전인 9월초까지의 환율 차트를 한 번 보겠습니다.

 

 

 

차트를 보면 2001년부터 환율은 줄기차게 떨어지다가 2007 11월에 바닥을 찍고 완만하게 오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06, 07년에 경상수지 흑자폭이 60억달러 정도로 줄었고, 08년은 경상수지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유가도 오르고 있었으니 환율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손이 082월달까지는 효율적으로 시장을 조절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완만하게 올라갔다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장참여자들의 합리적 기대가 바뀌고 그에 맞추어 포지션 변경이 일어났을테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터집니다. 시장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다고 믿는 정부당국이 3월달에 무지막지한 개입으로 단숨에 환율을 1030원까지 끌어올립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1030원이 참 싸 보이네요. 하지만 당시로 돌아가보면 940원대에서 놀던 환율을 일거에 100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입니다)

 

문제는 이 당시 외환시장에 가격이 얼마이던지 간에 무조건 외화를 사들여야만 하는 수요가 대기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첫째는, 해외펀드의 환헤지 물량 청산에 따른 수요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이전 글에서 수출기업들의 대규모 선물환 매도에 대해 설명드렸는데요, 우리 시장에는 수출기업들 말고 또 한쪽에서 대규모 선물환 매도를 쳐놓은 주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산운용사들입니다.

 

작년에 해외펀드 열풍이 불었는데요, 문제는 그동안 원화 환율이 계속 하락하다 보니 대부분의 해외펀드가 환율 변동 위험에 대한 헤지를 했습니다. 해외펀드 투자자들도 이를 원했고, 자산운용사들(정확하게는 펀드판매사들)도 환 변동 위험 헤지가 된 펀드를 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도 한쪽 방향으로의 쏠림이 생겼습니다.

 

자산운용사가 해외에 투자하는 펀드를 모집했는데, 여기에 950억원이 모였다고 치겠습니다.

자산운용사는 이를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바꾸어(1달러 = 950원을 적용하면 1억달러) 해외로 들고가서 주식시장에 투자합니다.

 

그리고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투자 당시 환율을 기준으로 은행에 선물환을 매도해 놓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해되시는지요?

 

해외 펀드의 만기가 딱 정해져 있다고 가정해 보면 이해가 좀더 쉬울 듯 합니다. 2년 만기라고 치면, 2년 뒤에 해외 펀드가 청산되면 그 금액을 다시 원화로 환전해 투자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 때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정해진 환율로 선물환 매도를 쳐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자산운용사들이 환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쳐놓은 선물환 매도는 수출업체들의 선물환 매도와 같은 구조가 됩니다.


앞서 조선업체를 예로 들어 선물환 매도에 따른 시장의 움직임을 설명드렸는데요, 여기서도 똑 같은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자산운용사의 선물환 매도를 받아준 은행은, 이전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환 변동 위험을 회피하고 안정적인 수수료 수입만을 먹기 위해 해외로부터 달러를 빌려와 현물시장에 내다 팔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얻게 된 원화자금을 대출로 운용하게 됩니다.

 

, 이 경우 수출업체들의 선물환 매도와는 파급효과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수출업체들의 선물환 매도는 그 결과 국내에 과잉유동성을 공급하게 되는데요,

 

해외펀드의 경우에는 과잉유동성 공급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애초에 해외 펀드 설정에 참여한 돈이 국내투자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원화자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해외펀드의 선물환 매도는 수출기업들의 경우와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킵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해외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해외펀드가 글로벌 증시 하락으로 20% 손실을 봤다고 치면, 기존의 선물환 매도에서 20% 만큼 오버헤지가 발생하게 됩니다. 즉 기존에 해놓은 선물환 매도는 20% 정도 지나치게 매도를 해놓은 셈이 됩니다. 그럼 이 부분을 해소해야 합니다.

 

자산운용사가 이 부분 만큼 청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까와는 반대로 은행은 20%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게 되는 결과가 생겨납니다.

 

문제는 해외펀드 계약시에 환 변동위험 헤지는 계약조건으로 딱 규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 얘기는 현물시장의 가격 조건 불문하고 기계적으로 매매가 일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을 일거에 100원 가까이 끌어올린 시점은 지난 3월 초인데, 이 때는 글로벌 증시가 대세하락하던 시기입니다. 특히 해외 펀드 중 비중이 절대적인 중국 펀드는 작년 10월에 고점을 찍고 대세하락 중이었습니다. 즉 이 시기에 해외 펀드의 환 헤지 물량 청산으로 인해 외환시장에는 가격 불문하고 달러를 사들여야만 하는 수요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9
월말 현재 순수 해외펀드의 설정액은 407608억원이라고 합니다. 950원을 적용하면 달러 기준으로는 429억달러 정도 됩니다.

 

자산운용사들은 해외펀드 운용시 설정액의 100%를 환헤지하는 것은 아니고, 30%-80%까지 환헤지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단순 계산하면 최소 129억달러에서 최대 343억달러 가량 선물환 매도가 되어 있던 셈입니다.

 

하지만 9월말 기준 순수 해외펀드의 순자산은 293778억원입니다. 투자원금의 28%(113830억원) 정도 손실을 본 것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최소 36억달러에서 최대 96억달러 어치의 선물환 매도가 청산되어야 하고, 그 금액만큼 외환 시장에는 가격 불문하고 기계적으로 달러를 사들여야만 하는 수요가 존재했습니다.

 

중간에 이명박 대통령이 달러를 사재기하는 세력이 있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수요를 오해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 째로, 시장에는 가격불문하고 달러를 사야만 하는 수요가 하나 더 있었는데요,

 

그것은 한참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수출기업들의 KIKO(Knock-In Knock-Out)형 옵션계약에 따른 수요입니다.

 

키코형 옵션계약은 수출기업들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려고 할 때 맺는 계약입니다. 선물환 매도에 비해 수수료가 싸게 먹힙니다. 또 이 계약을 중개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중개 수수료 수입이 더 짭짤한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중소기업들이 많이 가입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언론기사를 보면 해당 중소기업들에서는 정확히 어떤 계약인지도 잘 모르는 채 거래은행에서 열심히 권하니 수수료가 싸게 먹힌다는 말에 가입했다고 하네요.

 

키코형 옵션계약의 문제는, 시장환율이 상단가격(Knock-In이 발생하는 환율, 계약을 맺을 당시로서는 설마 이 가격은 넘어가진 않겠지, 라고 생각되던 환율)을 넘어서지 않으면 의도하던 환변동 위험 헤지 효과가 생기지만, 만에 하나 상단가격을 넘어서 버리게 되면,

계약금액의 2(계약 내용에 따라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를 높은 시장가격으로 매수해서 낮은 약정환율에 은행에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키코형 옵션계약으로 인해 부도가 나서 법정관리에 들어간 태산엘시디의 예를 보면, 약정환율 926.04원에 3 7천만 달러의 헷지 계약을 맺었습니다. 상하단 가격은 사업보고서에 안 나와 있는데, 상단 가격이 대략 960원 정도 아닌가 싶습니다.

 

시장환율이 상단가격 960원을 넘어서는 경우 태산엘시디가 계약금액 37천만달러의 2배인 7 4천만달러를 시장에서 매수해서 약정환율 926.04원에 은행에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던 당시의 환율 약 1140원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대략 1584억원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절반의 금액은 수출대금을 받으면 상쇄된다고 보더라도 792억원의 손실을 입게 됩니다. 1140원 기준으로도 이 정도의 손실입니다. 지금 환율 1400원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1년 순익이 100억원대인 회사로서는 견디어낼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보면 무모한 계약으로 보일 수 있는데, 07년 하반기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08년 예상환율을 800원대로 예측하고 있었습니다(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 했던 사람으로는 NH투자선물의 이진우 부장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제도권 외환 쪽에선 고수로 보입니다). 환율 전망이 800원대이다 보니 상단가격을 960원으로 하는 키코형 계약을 맺을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정부당국이 환율을 일거에 1030원까지 끌어올리던 3월달에 우리나라의 우량한 수출 중소기업들은 다수가 이런 키코형 옵션계약을 맺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우량한 수출기업이 아니었더라면 수출실적도 별 볼 일 없을테고 은행에서도 계약을 권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일로 우리 경제의 튼튼한 허리 역할을 하던 우량 중소기업들이 무너져 가야 하는 것은 참 눈물이 날 일입니다. 태산 엘시디 이후로 IDH, 우수씨엔에스 등이 추가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3월에 정부에서 환율을 인위적으로 1030원까지 끌어올리고 득의에 차 있을 때 이들 중소기업들이 받은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요?

 

정부당국은 외환 파생시장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야 합니다.

 

최소한 정부에서 3월달에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던 때는, 우리 외환시장이 파생시장과 맞물려 수요와 공급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뒤에 나온 당국자들의 발언을 보면 전혀 무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장보다 자신이 더 효율적인 조정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정부당국은 무지막지한 개입을 했고, 이로 인해 어찌보면 외환시장에는 괴물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급측면에서는 938억달러의 공백이 발생한 상태입니다. 수요측면에는 가격불문하고 무조건 사야만 하는 수요가 존재합니다.

 

KIKO형 옵션계약 잔액은 8월말 기준 79억달러입니다. 앞에서 추론해 본 해외펀드의 헤지 청산으로 인한 달러 수요는 지금까지 최소 36억달러에서 최대 96억달러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 물량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율 상승으로 외환시장의 거래량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에서는 조그만 수요로도, 특히 그 수요가 가격불문하고 무조건 사들여야만 하는 수요라면, 그로 인해 환율이 더욱 상승하게 됩니다.

 

일단 환율이 KIKO형 옵션의 상단가격을 무지막지하게 돌파하고 나자 어찌보면 코미디 같은 비극이 시작됩니다.

 

960원이 상단가격인 태산엘시디가 시장에서 마구 달러를 사들입니다. 그 옆에서는 해외펀드의 환헤지 청산으로 인해 또 가격 불문하고 달러를 사들입니다.

 

그럼 환율이 오르게 됩니다. 환율이 980원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럼 이젠 상단가격 970원에 계약을 맺은 B 회사가 달러를 사들여야 합니다. 가격불문 무조건 사야 합니다. 해외펀드 쪽에서도 가격불문하고 계속 사들여야 합니다.

 

그럼 다시 환율이 오릅니다. 상단가격 990원에 계약을 맺은 C 회사가 추가로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괴물은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물론 그동안 시장 참여자들이 과도하게 한 쪽으로 쏠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벌어진 이격도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듯이 과도한 쏠림이 초래한 부작용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의 난데없는 개입으로 인해 시장 참여자들이 자신들이 가졌던 합리적 기대를 수정하고 포지션을 변경할 시간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점입니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환율이 하락했으므로 모든 시장참여자들은 환율하락을 전제로 행동해왔습니다. 그러다가 환율은 시장의 자동 조정기능에 의해 작년 11월을 저점으로 서서히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시장의 자동 조정기능이 이미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부당국의 갑작스런 개입이 없었다면 서서히 진행된 환율 상승으로 인해 시장참여자들은 자신들의 합리적 기대치를 수정하고 포지션을 변경해 나감으로써 새로운 추세에 적응해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1500원 넘게 치솟는 일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정부에선 개입으로 환율을 끌어올려놓고는 그 다음에는 나타난 결과에 당황해서 부랴부랴 이번엔 환율 떨어뜨린다고 피 같은 외환보유고를 수백억달러나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외환보유고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결과는 현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3월달에 있었던 정부의 무지막지한 환율 개입은 어찌보면, 시장참여자들의 합리적 기대를 깨뜨린 정부의 잘못된 개입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경제학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케이스 같습니다.

 

아니면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불러일으킨다는 카오스 이론이 경제 분야에서 논의되는 게 괜히 폼잡기 위한 얘기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듯도 하구요,

 

큰 문제는 전세계의 환투기세력들이 이러한 한국의 상황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투기세력들이 작전을 짜서 맘먹고 달려든다면,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투기세력들의 연합공격에 영국정부가 두 손을 들었던 상황이 한국에서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환투기세력들에게 이보다 확실한 먹잇감이 또 있을까요? 공급 쪽에는 상당한 공백이 있고, 수요 쪽에선 가격이 얼마이든 반드시 사야만 하는 수요가 있고...

 

그동안 우리 외환시장이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끊임없이 오르기만 했던 데에는 이상과 같이 수요와 공급 양 쪽 측면의 특수사정이 존재했습니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이런 특수사정과 맞물려 괴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괴물은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어쩌다 일어난 일과성 해프닝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에너지를 먹고 크더니 무시무시한 악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태산엘시디를 비롯한 3개 회사를 집어 삼켰습니다.

 

3개 회사에서 끝날지 어떨지는 외환시장의 안정과 정부의 지원책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여부에 달린 것 같습니다.

 

키코형 옵션에 가입한 기업이 부도가 날 경우 계약을 중개한 은행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태산엘시디에 옵션계약을 중개한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환율 1400원 정도로 계산할 경우 떠안아야 할 손실이 대략 6700억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금융지주 작년 한 해의 순익이 1 3천억인데, 작년이 은행들에게는 특별한 호황기였음을 감안하면 큰 부담이 되는 액수입니다.

 

태산 엘시디의 경우 위에서 사례로 든 키코형 옵션 계약 말고도 피봇형 옵션 계약을 대규모로 맺은 것이 있어서 특별히 손실규모가 큰 기업입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의 손실금액이 이보다는 적다 해도 다수의 기업들이 부도가 난다면 이로 인해 은행들에 가해지는 부담은 상당하리라 예상됩니다.

 

저는 반등국면을 예상하고 있는데, 반등국면이 지속되면서 환율이 더 떨어지게 되면 키코문제도 잠잠해지고, 환율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설명드린 외환시장의 수급 문제는 향후 2년 정도 지속되는 문제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반등 국면이 끝나고 나서 다시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봅니다.


  • 태그 선물환매도, 괴물, 외환, 환율, 선물환, 정부
  • 히트히트신고신고


Posted by kevino
,